국가유공자들 전쟁의 아픔. 상흔 등 꺼내기 싫었던 얘기 박 팀장에게 스스럼 없이 쏟아내며 위로받아, '위로 전도사'로 활동
"보금자리 만들어 오갈데 없는 나이든 국가유공자들 돌아가실 때까지 즐겁게 지내도록 해주고 싶어"
박우철 의정부보훈지청 명예팀장이 20여년 동안 자비들여 어렵게 사는 참전용사 등 국가유공자 돕고있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눈길을 끌고 있다.
박우철 명예팀장은 방송인 박경림씨의 부친이기도 하다.
박 명예팀장은 어려운 국가유공자 가정을 찾아 말벗이 되거나 조금씩 돕기를 20여년째 하고있다. 전국에서 이같은 명예팀장은 박우철씨 혼자다.
본지가 박 명예팀장을 만나보았다.
박 명예팀장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오갈데 없는 나이든 국가유공자들을 돌아가실 때까지 즐겁게 지내도록 해주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의정부보훈지청 명예팀장으로 해병대 185기이자 월남전에 참전한 유공자이며 방송인 박경림씨의 부친으로 알고있다. 보훈과 관련해 자신을 소개해 달라
185기 해병대 신병 훈련을 끝내고 특수훈련을 6개월 받은 뒤 바로 파월(베트남 파병) 했다. 그곳에서 팔과 다리, 어깨에 부상을 입고 필리핀의 병원에서 치료를 한 뒤 한국의 병원으로 왔다.
3급을 받고 제대를 했지만 그때만 해도 크게 보훈 시책을 잘 몰랐다. 1968년 제대후 6개월에 3천원을 받던 시절 시골의 동생 4명과 자식 4명을 두고 어렵게 부양했다.
당시 구파발에서 살아 북부보훈지청이 관할이었는데 둘째 딸이 장학금을 받으면서 보훈혜택이란 것을 생각했고 상이군경집이라고 학교에서 라면봉지에 쌀을 담아 주는 등을 보며 내가 형편이 나아지면 국가유공자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가져오곤 했다.
▶20여년 동안 자비를 들여 어렵게 사는 참전용사 등 국가유공자 가정을 돕고있는 것으로 들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나
구파발에서 살 당시 10여년 동안 2통 새마을지도자를 맡으면서 어르신들을 모시는 것으로 일부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고 88년도엔 표창을 받는 등 돕는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어려워도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해 주었는데 학비가 없었으나 학비 혜택을 받았고 국가유공자라고 암사동에 자그마한 아파트를 분양받으면서 이렇게 도움을 받는구나. 나도 도와야 겠다는 생각으로 이때부터 국가유공자 돌보기를 해왔던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이들이 있나
참전 유공자의 가족인 한 홀몸 어르신이 집수리로 한달정도 양로원에 의탁했다가 모시러 갔는데 주위 어르신들이 나도 좀 데려가달라고 너도나도 나를 부여 잡아 눈물을 쏟은 적이 있다.
또 결혼 한달만에 참전한 남편이 전사한 홀몸 어르신은 아파서 병원을 간 사이 양아들이 집을 허물어 버려 갈곳이 없자 충격으로 돌아가셨는데 살아생전 남편이 묻혀있는 현충원에 가보고 싶어해 박우철 팀장이 해마다 모시고 간 것을 항상 고마워 했다.(의정부보훈지청 관계자의 말)
▶의정부보훈지청 명예팀장은 주로 어떤 일을 하나
주로 국가유공자중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과 6.25때 참전해 부상을 당해 몸이 많이 불편한데도 급수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어렵게 사는 이들을 찾아본다.
이들은 정신적으로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데 이들을 찾아 말벗이 되거나 조금씩 돕는다.
전국에서 이런 일을 하는 명예팀장은 나 하나다. 지금은 도우미들도 많아졌다.
▶이런 명예팀장을 더 둘 필요가 있지않은가?
보훈지청이 국가유공자중 명예팀장 제도를 두고 이런 사람을 발굴했으면 좋겠다.
박우철 팀장이 하는 일을 보고 국가유공자 한 분이 본보기로 삼겠다며 함께 참여하는 이가 생겼다.(의정부보훈지청 관계자의 말)
▶활동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있다면
어려운 것은 없다. 목적없이 도와주는 것이 목적이니까 어려우면 안하면 그만이다.
즐거운 맘으로 도아주는 것이 목적이니 불평불만을 조금이라도 가지면 안되는 것이다.
단지 내가 보훈지청 직원인줄 알고 지난해 지원해 주고 왜 올해는 안주냐고 따지는 경우가 있긴 하다.(웃음)
연세 많은 이들 중에는 전쟁경험을 같이 겪은 박 팀장을 기다리는 경우도 많은데 전쟁의 아픔. 상흔 등 꺼내기 싫었던 얘기도 스스럼 없이 하기도 한다.(의정부보훈지청 관계자의 말)
▶의정부보훈지청에서 보비스 청소년 발대, 애풀 청소년단 등 청소년들의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기 위해 여러가지 사업을 하고 있다. 젊은세대의 애국심에 대해 어찌 바라보나
사실상 전쟁시대와 멀리 떨어진 중고등학생, 대학생들까지도 애국심이랄까 잘 모르는것 같다.
안중근 의사가 왜 의사가 되었는지, 미군주둔 문제 등은 살아가는 현실만 보여지니 그럴 수 밖에 없다.
역사를 알아야 나라사랑. 애국심. 무궁화. 태극기 사랑이 나온다. 아쉬운 점이 많다.
▶6.25 전쟁당시 UN에서 참전했는데 이들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는 나라가 대한민국밖에 없다고 한다. 어떤 마음인가
외국에 아무 이유없이 도와주러 왔다 꽃이 피기 전 전사한 것인데 마땅히 기념비를 세우고 추모하는 건 맞는 것이라 생각한다.
▶최근 의정부시에서 정전 60주년을 기념해 노르웨이 참전 기념비가 제막되는 등 각 지역에서 비슷한 기념 사업을 하고있다. 소감을 말한다면
참 좋은 일이다.
참전비를 세우고 60주년을 기념하는 것에 대해 감개무량하다.
그들이 살면 얼마나 살겠는가.
많이 홍보해서 본보기가 됐으면 좋겠다.
학교에 보훈과 관련한 교육을 나가면 통일을 원치 않는 아이들도 많아 전쟁이 끝난게 아니라 멈춰있는 것이라고 말해주기도 한다.
▶앞으로 보훈 명예팀장으로서 포부가 있다면
의정부보훈지청을 어머니로 두고 전국 명예팀장을 하는 것이 꿈이다.
전국에서 일이 있으면 직접 명예팀장도 함께해 도움을 줄 일이 있으면 하고 싶다. 국가유공 노인들이 사시면 얼마나 더 살겠는가.
내가 할 수 있는게 이야기 나눠주는 것이니 전국으로 찾아가 위로해 주고 싶다.
5층 정도 건물을 지어 오갈데 없는 나이든 국가유공자들을 무료로 돌아가실 때까지 즐겁게 지내도록 해주고 싶다.
▶태극기나 무궁화 등 나라 상징물에 대한 보호 및 활용에 대한 바람이 있다면
예전에는 극장에서도 애국가를 상영했는데 그런 것도 부활 좀 했으면 좋겠고 TV도 처음이나 끝날 때 애국가를 넣으면 좋겠다.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학교 교문 옆에는 꼭 무궁화를 심어서 커가는 학생들이 늘 볼수 있으면 좋겠다.
▶정부나 자치단체 등에 하고 싶은 말은
다 잘들 하고 있겠지만 특히 국가유공자들에게 신경을 써 주면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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